まさおか しき는 일본 俳句의 신체제를 처음으로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.
司馬遼太郎선생의 小説「坂の上の雲」에서 俳人 正岡子規의 人物紹介로
여러 장의 지면을 할애 하였던 군요.
이 소설의 主人公 陸軍大将 秋山好古와 동생 海軍中將 秋山真之-- 이중
동생인‘さねゆき와 正岡子規는 유년부터 같이 잘아 났으며 그들의友情은
각별했습니다.
모두 愛媛県松山市가 고향. 夏目漱石가 일시 교편을 잡았던 곳. 그래서
“まさおか”와 교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.
처음은 正岡의 영향을 받아 真之도 가사문학을 지망 1고를 거쳐 동경제대
예비교양학부에 입학 졸업 후 帝国大学文学部로 진학하는 子規와는 길을
달리하여(1886年)海軍兵学校에 입학을 합니다. 이는 형에게 학비를 의존
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문학을 포기하고 해군을 택하게 되었는데 후일
일로 전쟁으로 러시아의 발틱함대(Baltic Fleet)를 조선해협에서 맞이하여
전멸 시킬 때 그가 만든 유명한 메시지는 지금도 일본 문학의 향기 높은 단가
(短歌)로 까지 칭송 합니다.
「本日天気晴朗ナレドモ浪高シ」-
일본 대본영에 보낸 모르스 신호 문입니다.
또한 우리가 초등학교 때 일본 교과서에서도 배운 다음 문장도 그가 만든
작문이라고 합니다.
Z旗の信号文「皇国ノ興廃 此ノ一戦ニ在リ、各員一層奮励努力セヨ」
日露海戦에 勝利한 후 連合艦隊의解散式의 사령관 東郷平八郎의訓示도
秋山가起草했다 합니다.
이 文章에 感動한 당시의 美國 大統領 루스벨트는 全文을 英訳시켜、美国
海軍에 頒布했다합니다.
이후 그는 名文家・文章家라고도 세상에 알려져 후에는「秋山文学」이라고
높이 評価됩니다.
초야에 묻혀 있던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발굴해 내서 일본의 역사를 다시 쓰게
한 司馬遼太郎선생은 소설가이기보다는 도리어 역사학자라는 높은 평가를 사
후에 받고 있습니다.
전에 열화당 대표 이기웅 선생(강능 선교장 주인)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본
기억인데 한국의 소설 작가나 역사학자는 많은 연구로 깊은 지식이 있는 분은
글로 표현하는 문장력이 부족하고 문장력이 있는 분은 다르고 져 하는 사안에
대한 깊은 지식은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일본의 司馬나 松本淸張 같은 전
천후 작가가 없다는 것이 약점이다 라고한 평을 보았습니다.
매우 공감이 가는 말 이였습니다. 正岡子規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みちくさ로
다른 곳으로 많이 흘렀습니다. 양해 있기 바랍니다.
2011. 9. 3.
-- 芝 泉--